박찬욱 감독 할리우드 진출작

▲ 사진=네이버 영화

[위클리오늘=전리나 기자] ‘스토커’는 한 마디로 ‘심기가 불편한 영화’다. 영화 전반에 걸쳐 암울함으로 가득하다. 유쾌함이나 즐거움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주인공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브스카)와 삼촌 찰리 스토커(매튜 구드)의 타고난 잔인한 기질, 이로 인해 잇따르는 끔찍한 살인,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감정변화가 없는 기괴함은 관객의 속을 메스껍게 한다. 영화를 보고나면 한바탕 토악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영화관을 뒤로하는 순간 묘한 호기심이 자극받는 걸 느낀다. 이 자(감독)가 다음엔 어떤 불편함으로 나를 자극할 것인가.

영화 전반 암울함으로 가득…즐거움 없어
주인공의 잔인한 본능 관객 메스껍게 해

영화 제목은 스토커다. 흔히 스토커는 남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람을 뜻한다. 사냥꾼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 영화는 스토커(Stalker=사냥꾼)가 아닌 스토커(Stoker)라는 성을 지닌 가족의 이야기다. 두 단어의 발음이 똑같아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스토커씨 이야기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진짜 제목이 스토커(Stalker)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 인디아가 “꽃이 자신의 색을 결정지을 수 없듯이, 내가 무엇이 되든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대사를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 초반에는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가 점점 진행되면서 대사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내재돼 있는 인디아의 잔인한 본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 사진=네이버 영화

인디아는 18살 생일에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장례식장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를 처음 만난다. 남편의 죽음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인디아의 엄마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잘생기고 다정한 삼촌 찰리에게 남성으로서의 호감을 느낀다. 사회성이 결여된 인디아는 다정한 삼촌 찰리를 경계면서도 점점 잔인한 기질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매력적인 삼촌 찰리가 등장한 이후 스토커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인디아의 아버지 리차드가 죽기 전에 인디아와 함께 사냥을 많이 다녔다는 엄마 이블린의 대사가 자주 반복된다. 아버지 리차드가 인디아에게 사냥을 가르쳤던 이유는 인디아의 본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을 가르치면서 아버지 리차드는 인디아에게 “우린 가끔 나쁜 짓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 나쁜 짓을 막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 사냥은 인디아가 커가면서 찰리의 모습을 보게 된 리차드의 선택이다. 인디아의 잔인한 본능을 해소시키기 위한 하나의 임시방편이었던 것.
 
인디아의 잔인한 본성은 영화 중반 즈음부터 나타난다. 인디아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았던 유모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시체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친구 윕의 죽음을 대하는 인디아의 무덤덤한 태도는 관객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인디아는 엄마 이블린과 삼촌 찰리의 키스 장면을 목격하고 학교 친구 윕을 숲으로 데려가 키스를 한다. 인디아가 더 깊은 관계를 요구하는 윕을 강하게 거부하는 찰나 갑자기 나타난 삼촌 찰리가 벨트로 윕의 숨통을 끊는다. 충격적인 살인 장면을 목격한 인디아는 집으로 돌아와 흙투성이가 된 몸을 씻으며 자위를 한다. 자위는 18살 인디아의 첫 번째 성적 카타르시스이자 살인의 쾌감 표출이다. 살인의 자극을 자위의 자극으로 해소하는 이 장면은 일면 관객을 매우 불편하게 한다.

▲ 사진=네이버 영화

삼촌 찰리는 인디아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스토커이면서 살인자다. 인디아 곁에 머무는데 방해가 되는 자들을 모조리 제거한다. 인디아의 유모, 고모 할머니, 남자친구, 어머니를 차례로 죽인다. 심지어는 자신의 친형이자 인디아의 아버지마저 살해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죽인 사실을 인디아에게 모두 털어 놓는다. 사이코패스에 다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디아는 찰리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기 시작한다.
 
찰리는 인디아를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보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디아는 다르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사냥꾼의 본능이 인디아를 일깨운다. 목표물이 나타나기까지는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기회를 포착하면 망설임 없이 한방으로 숨통을 끊어야 한다. 인디아는 사냥꾼의 본능으로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찰리를 저격한다. 잔인한 기질은 타고 났으나 인디아는 잔인한 살인자 찰리를 죽이는 것으로 운명을 전환한다. 인디아는 찰리를 죽인 뒤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동일하다. 첫 장면에서 읊조린 대사가 반복된다. 대사의 의미가 비로소 완전한 이해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 작품은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의 첫 시나리오다. 밀러는 약 8년에 걸쳐 ‘스토커’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는 시나리오에서 ‘테드 폴크’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배우가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밀러의 시나리오는 첫 작품치고 뛰어난 완성도와 몰입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할리우드에서 2010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블랙리스트란 그 해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 중 최고를 꼽아 선정하는 비공식 리스트다.
 
 
박찬욱 감독은 매번 영화에서 관객을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준 영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 ‘스토커’에 대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본능적이고 시적이다. 인간의 면모를 잘 나타낸다”라고 극찬했다. 박 감독의 다음 영화기 또 어떤 불편함으로 다가올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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