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탄압·사기경영·배임 혐의 피소

▲ 이석채 KT 회장.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안정만기자] 이석채(68) KT 회장은 역대 정권마다 ‘IT 대통령’으로 불렸다. 기업인으로 변신한 이 회장의 파워는 2009년 KT 대표 취임 엿새만에 KTF와의 통합을 결정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관련업계의 거센 반발을 뿌리치고 불과 3개월만에 합병 승인을 내줬다. “IT 세계 1위를 꿈꾸며 KT가 그 밀알이 되겠다”라는 그의 말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인 23조7903억원을 올리며 현실로 다가왔다. 고위직 절반을 외인부대로 채우면서 기존 공기업식 경영·인사 패턴에도 제동을 걸었다. KT는 2011년부터 2년 연속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통신분야 1위에 선정됐다.
청와대 경제수석,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지낸 그도 권불십년(權不十年)인가. 이 회장이 새정부 출범 이후 바람 잘 날이 없다. MB 정권의 대표적 낙하산 인사로 지목되고, 최근 배임과 비리혐의로 시민단체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장 거취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이 회장의 배임·사기·노동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이 조속히 수사에 착수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KT 1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이 회장의 책임을 묻고 퇴진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이 회장은 비리백화점”
 
최근 참여연대·민변·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는 이 회장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와 제주 7대 경관 국제전화 투표 사기,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노동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KT는 흑자기업이면서도 이 회장 취임 이후에만 6000명을 내쫓았다. 또 인력퇴출프로그램인 ‘CP 퇴출 프로그램’을 만들어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이 사표를 쓰게 만들었다. 최근 4년 동안 KT 관련 사망 노동자 수만 73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고객 기망행위로 지목된 ‘제주7대 경관 국제전화 사기사건’은 KT가 사실상 국내통신망을 제공하고도 이를 국제전화로 가장해 228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범법행위’라는 지적이다. KT 새노조에 따르면 감사원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주의를 통보하고 방통위는 KT에 350만원의 과태료를 내렸다. 시민단체들은 신속한 처벌이 당연한데 검찰이 미적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과정에서 사용된 대포폰(차명휴대폰)을 서유열 KT 홈부문 사장이 개통해 준 사건에 대해서도 “KT의 도덕성 결여”라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7일 이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했다. 스마트몰 사업의 경우 명백히 수백억원의 적자가 예상됨에도 거듭 투자를 지시했고, 자회사인 KT OIC 등을 인수·편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친인척에게 거액의 시세차익을 안겨주고 회사에는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게 주된 고발 내용이다.
시민단체들의 연이은 문제 제기에 이 회장이 코너에 몰리는 형국이다. KT측은 이 회장의 배임 혐의 등과 관련, “개별 민간 기업의 투자행위에 대해 손실 발생 우려가 있다며 고발하는 것은 기업의 정상적인 투자 행위를 위축시키는 것”이라며 “고발내용은 일부 반(反) 회사 세력이 의도를 갖고 생산한 루머에 기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스마트애드몰·OIC·사이버MBA사업 ‘배임의혹’
 
참여연대는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현 KTOIC), 사이버MBA(현 KT이노에듀) 사업 등 총 3건에 대해 이 회장이 KT CEO로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짙다고 주장했다. 스마트애드몰 사업은 서울도시철도 5·6·7·8호선 역사와 전동차 내에 무선 전송시스템을 이용한 LCD 모니터 동영상 광고를 표출하는 사업권으로, 회사 실무 책임자들이 ‘수백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만류에도 사업을 강행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OIC랭귀지비주얼 사업은 KT가 OIC 설립에 참여하고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자사 윤리경영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과 8촌인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OIC랭귀지비주얼 설립 주도)에게 수억원의 이득을 주고 회사에는 59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게 골자다. 또 유 전 장관이 회장을 역임한 사이버MBA를 기존 주식가보다 9배 비싼 가격으로 인수해 77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이다.
KT측은 이에 대해 “스마트몰 사업은 2008년 10월 사업입찰 참여가 결정된 사안으로, 이후 취임한 이 회장과 연결시켜 배임을 언급하는 것은 맞지 않다. 또 교육콘텐츠 육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OIC를 정당한 절차로 인수했고 그 과정에서 이 회장 친척으로부터 지분을 매입한 사실이 없다. 사이버MBA는 올해 3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는 관련분야 전문 업체로, 삼정회계법인의 객관적 평가에 의해 지분가치를 산정해 주식을 매입했고 유종하 전 장관보다 지분을 많이 보유한 개인도 다수 있어 그를 위해 지분을 인수했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해명했다.
 
임기 2년이나 남았는데 왜?
 
KT는 1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의 안건이 상정돼 모두 원안대로 승인됐다. 현장에서 시민단체와 일부 주주들의 퇴진요구 등 일부 마찰을 빚었지만 이 회장은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회의적인 관측이 많다. MB 정부 시절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겨냥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사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내려면 인사가 중요하다.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노력하라”고 지시했다. 후보 시절 공기업에 낙하산을 내려 보내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과 사뭇 다르다. 정부가 민영화된 KT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이 회장의 임기보장을 장담키 어렵다.
앞서 14일 민주노총·참여연대·민변노동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이석채 회장은 비리의 총체”라며 퇴진과 검찰의 처벌을 요구했다. 권영국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이날 “노동인권 탄압경영, 대국민 사기경영, 배임경영 등 대기업 CEO의 자격을 상실한 이 회장의 퇴진과 처벌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며 “오죽하면 시민사회가 특정기업 회장의 퇴진과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겠냐”고 반문했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