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구체적 성과 못내면 찻잔 속 태풍에 그쳐

▲ 안철수 의원은 그가 말한 '새정치'를 현실정치에서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 한기주 기자] 서울시장 후보, 대통령 후보에 도전했던 안철수 교수가 돌고 돌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신관 518호에 안착했다. 2011년 10·26 재보선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이후 정치권에 문을 두드린 지 1년6개월여 만이다. 안 의원은 300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이지만 그가 갖는 정치적 비중은 크다. 당장 민주당은 ‘안철수발(發) 태풍’에 휩쓸리는 ‘탈영병’이 있지 않을까 물샘틈 없는 방비에 들어갔다.

 
“새정치는 유권자에 약속한 것을 실천하는 것”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받들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 모든 것을 걸고 어떤 가시밭길도 가겠습니다.”
19대 국회 새내기 안철수(51)의원이 당선이 확정된 후 한 말이다. 그는 선거 다음날인 25일 아침, 부인 김미경 씨와 함께 노원구 마들역으로 달려갔다. ‘감사합니다’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바삐 출근하는 주민들의 손을 잡으며 “열심히 하겠습니다”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상기된 얼굴로 당선 인사를 하는 것이 영락없는 ‘초짜’ 의원의 모습이었다고 했다.
 
전철역의 러시아워가 지나자 그는 하얀 우비를 입은 채 상계동 ‘달동네’ 일대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 감사 인사를 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서는 확성기를 들고 “지난 선거 때 약속드린 것처럼 (당선 한 뒤) 다시 왔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선거기간 약속한 것들 꼭 지키겠습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달동네를 다시 찾은 것에 대해 그는 “새정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열심히 묵묵히 살아가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해준다고 말하지만 새정치는 그것을 실천, 실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말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기본기’를 강조한 것이다.
 
여야의 패거리정치 휩쓸리면 새정치 힘잃어
여론을 활용한 고공전에 능했던 ‘타이밍 정치의 달인’ 안철수 의원은 국회의원 선거를 처음 치르는 초짜로서 지난 40여일 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대선 때는 수백 명, 수천 명이 모여 있는 장소에만 골라서 갔는데, 국회의원 선거는 저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이라도 제가 직접 만나러 가야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대선 때는 직접 국민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적었는데, 이번에는 ‘집 앞에 맨홀뚜껑 갈아달라’ ‘골목이 너무 지저분하다’ ‘장사가 안 된다’ ‘우리나라 정치 좀 제대로 해 달라’고 하는 등 정말 대화의 폭이 다양했다”고 털어놨다. 말로만 했던 ‘생활정치’를 이번 선거 때 피부로 경험했다는 얘기다.
안 의원은 이런 체험을 근거로 “거대담론이나 국가적 아젠다를 말하기 이전에 제가 상계동에서 듣고 약속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면 유권자들이 제가 말하는 새정치를 체감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평론가들은 19대 국회에서 활동할 대선주자급 새내기 의원인 안철수를 주의깊게 지켜봐야하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현실 정치권과 거리두기를 유지해온 안 의원이 자신이 활약할 현실정치 무대에서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가 여야의 패거리정치에 휩쓸리거나 국회의원이 가진 특권과 기득권에 둔감해지는 행태를 보일 때 그의 새정치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국회라고 하는 곳이 그렇게 간단한 곳이 아니다. 안 의원이 결국 300분의 1로 제2의 문국현(전 창조한국당 대표)역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현실정치가 쉽지 않음을 주장한 바 있다.
 
국민 입장에서 좋은 것이라면 적이라도 협조
안 의원은 이와 관련해 “정치 제대로 하라. 민생 문제 챙겨달라. 싸우고 막말하지 말라는 말씀 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정치는 편가르기, 피아가 분명해서 맞는 말도 반대하는 식으로 선명성 경쟁을 계속해 왔다. 새정치는 국민 입장에서 좋은 것이라면 적이라도 협조하는 것”이라고 말해 사안에 따라서는 여야 정당에 관계없이 연대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안 의원은 자신의 새정치 열망이 혼자만의 울림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민생, 경제정의 등 정책과 비전 개발을 위한 싱크탱크(연구소)를 설립하고 ‘새정치’를 연구하는 여야 의원 모임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열기가 식은 안철수 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안 의원은 지난해 진보와 보수 중간지대에서 여야 후보를 위협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야권의 대선 패배 후 안 의원에 대한 지지 열기는 다소 잦아든 모습이다. 특히 지난 2월 야권과 진보 진영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노원병 보선 출마를 발표했을 때 비판론이 만만치 않았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은 “안 후보가 내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새정치를 한다며 구태정치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서도 “가시밭길을 가겠다는 안 후보가 쉬운 정치를 하려 한다”고 지적했었다.
 
안 의원 역시 조급한 선거출마로 실수도 했다. 책자형 선거공보 <안철수의 새정치, 노원에서 시작합니다>에서 ‘동북권 경전철 조기 착공 및 상계 노들역까지 연장’ 공약을 내세웠는데, 사실은 노들역이 아니라 ‘마들역’이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으로부터 “자기 선거구의 지하철 역명도 모른다”는 핀잔도 들었다. 때문에 안철수 의원에게는 과거의 지지열기를 회복할 수 있는 모습을 성과로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당장 국회 활동에 익숙해지는 것이 먼저
세 번째는 안 의원이 야권발 정계개편의 불을 언제 당길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안 의원은 이달 말까지는 의정활동 준비에 주력한 뒤 민주당의 5·4 전당대회가 끝나면 정치 지형 변화를 주시하며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에 대한 지지세가 높은 광주와 호남지역을 직접 방문하거나 수도권과 영·호남 등지에서 대선 때의 지방 조직 재건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5‧4전대 이후 구성될 민주당 새 지도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민주당의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불거져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내려질 경우 안철수 민주당 입당을 추진하려는 ‘안철수 수혈론’이나 ‘안철수 신당론’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될 경우 민주당 일부세력이 이탈해 안철수 의원 측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치세력화→신당창당→정계개편’이라는 안 의원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시나리오는 아직은 먼 얘기다. 당장 ‘초짜의원’ 안철수에게는 국회 활동에 익숙해지는 것이 먼저다. 안철수 의원의 행보가 정계개편의 회오리바람이 될지 찻잔속 태풍에 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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