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vs 문재인 ‘대기업군 관련 공약’ 비교해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여야 대선후보들이 제시한 10대 공약이 올라와 있다. 박근혜 후보는 이중 첫 번째 공약으로, 문재인 후보는 일자리, 복지 공약에 이어 세 번째로 ‘경제민주화’를 꼽았다. ‘공정한 경제’를 염원하는 시중의 여론을 그만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재벌의 부당행위와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재벌 관련 공약에는 적잖은 온도 차이가 있다. 

총수일가 경제범죄
“집행유예는 없다”

박 후보와 문 후보가 하나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은 대기업군 총수 일가의 경제범죄다. 특히 특가법상의 횡령이나 배임 범죄를 저지를 경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집행유예’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이 경우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도 엄격히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후보들은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총수 일가의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민사 책임도 묻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이를 위해서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부당내부거래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부당이익을 환수토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박 후보는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총수 또는 총수 일가를 위해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회사 기회를 유용한 자(예: 이사)뿐만 아니라 이를 지시한 자(예: 총수)에게도 과징금과 벌금을 부과하는 등 실질적 제재를 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도 비슷한 입장이다. 부당지원으로 이득을 얻은 계열사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부당이익을 얻은 총수 일가에 대한 과세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상당수 재벌총수들이 그룹사로 하여금 자신이나 자녀가 대주주인 계열사 및 관계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올리던 ‘관행’에 일단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칙으로 벌면 
배 이상 뱉어내야

후보들은 재벌의 불공정 거래로 하도급 업체 등이 피해를 입을 경우 손실을 보상 받는 방안도 내놓았다. 박 후보와 문 후보 모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 유사한 불공정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국가적 처벌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제도다. 문 후보의 경우 아예 범위를 넓혀 공정거래법 및 하도급 위반행위 전체에 대해 ‘3배 배상제 도입’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두 후보는 대기업의 부정행위로 인한 소비자 및 소액주주의 피해 구제책으로 ‘집단소송제’ 확대를 약속했다. 집단소송제는 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해당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미국에서 벌어진 고엽제 소송, 자동차 관련 소송, 담배 소송 등이 집단소송의 형태로 제기된 것들이다. 피해자가 많을수록 보상액수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일각에선 ‘저주의 소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미국 담배 소송의 경우 2009년 연방대법원이 피고인 필립모리스에 “원고에게 8080만 달러(당시 약 900억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현재 국내에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만 도입된 상태다. 재계에서는 집단소송제의 확대 공약에 대해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된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고질적 지배구조 바뀔까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 중 재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항목은 다름 아닌 ‘순환출자 금지’다. 재벌들이 계열사를 늘리고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요 편법 중 하나가 바로 순환출자이기 때문이다. 가령 A 사가 B 사에 출자해 최대주주가 되고, B 사가 C 사에, 또 C 사가 D 사에 출자해 각각 최대주주가 될 경우 B 사의 최대주주인 A 사는 직접 투자한 B 사뿐만 아니라 C 사와 D 사를 동시에 지배할 수 있다. 이어 D 사가 지배주주 격인 A 사에 일정액을 출자하면 A 사는 자본금을 불리면서 B, C, D 사에 대해 확실한 지배주주 역할을 하게 되는 구조다.

순환출자는 재벌에게는 유용한 계열사 증식·지배 방법이지만 장부상으로만 자본 규모가 커질 뿐이다. 오히려 한 계열사의 부실이 출자한 다른 계열사의 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소지가 크다. 현행 공정거래법과 상법에서는 두 계열사 간 상호 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결국 순환출자가 위법은 아니지만 법의 맹점을 이용한 편법인 셈이다.

박 후보와 문 후보는 공통적으로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약속하고 있다. 공약대로라면 누가 당선되든 다음 정권에서는 재벌들의 계열사 불리기 편법이 통하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숙제로 남는 것이 있다. 기존의 순환출자에 대해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지점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시각이 크게 엇갈린다.  

박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는 건드리지 말고 여기서 나오는 의결권도 인정하자는 방침이다. 반면 문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도 향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후보가 기존 순환출자를 ‘인정’하자고 한 데에는 나름의 연유가 있다. 바로 주주총회 ‘의결권’ 때문이다. 적대적 M&A(인수합병)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 하고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문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를 3년 이내에 해소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출자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내놨다. 재벌의 심각한 문제점이 계열사 간 내부거래인데 이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순환출자의 해소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순환출자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상당수 재벌들로서는 문 후보의 방안이 핵폭탄과 다를 바 없다.  

소액 주주 권익 보호 한목소리

박 후보와 문 후보 모두 재벌 총수일가 등 지배주주의 독단적인 경영으로부터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할 방안으로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하지만 ‘속도’에서는 두 후보 간 차이가 있다. 박 후보는 ‘단계적인 도입’을 제시한 반면 문 후보의 방안은 ‘전면 도입’에 가깝다.

집중투표제는 기존의 단순투표제(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의 의결권을 모든 이사 선임 대상자에게 행사하는 제도)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주주총회에서 주주가 선임 예정 이사와 같은 수의 의결권을 갖게 되며, 이 의결권을 후보자 한 사람 또는 몇 명에게 집중적으로 행사해 득표수에 따라 이사를 선임하게 된다. 단순투표제가 지배주주에게 유리하다면,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 적합한 셈이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주주에게 일종의 손해 청구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나 손자회사 등기이사의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될 경우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주총 때 소액주주들과 실랑이를 자주 벌이는 재벌 입장에서는 후보들이 약속한 두 제도 모두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재계 ‘좌불안석’

여야 유력 후보가 내놓은 재벌 관련 공약에 대해 당사자 격인 재계는 어떤 입장일까. 재계 분위기는 간단히 표현해 ‘당혹 반, 불안 반’이다. 재벌 및 대기업의 창구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일찌감치 성명을 내놓고 “(후보들이) 표를 의식해 재벌 때리기 위주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상당수 재계 인사들은 야권 후보에 비해 보수적인 평가를 받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공약 중에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대기업의 투자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긴 재벌기업들 입장에선 현재 상황이 ‘상전벽해’와 다를 바 없다. 2007년 대선 때만 해도 ‘경제 살리기’가 화두였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표를 긁어모았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친 기업 정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재계에선 후보들의 공약이 아직 법이나 제도로 시행되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향후 ‘합리적 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 후보로서의 입장과 국가 경영자로서의 입장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어찌 보면 후보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 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