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국정원 압수수색 이후 제보자 상대 수사 급물살

 

[위클리오늘=신상득 사회·문화전문기자] 이른바 ‘국정원게이트’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국정원게이트’는 1972년 6월 미국의 대통령 후보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댄 개념이다.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닉슨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도청장치를 하려고 시도했던 사건이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이 알려져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1974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임기중 사임하는 수모를 겪었다. ‘국정원게이트’가 거론되는 것은 지난해 대선에서 국정원이 여론조작에 개입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여론조작에 과연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일까.
국정원의 여론조작 관여는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11일 불거졌다.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제보를 받은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여직원의 집을 에워싸면서 시작됐다. 국정원 여직원은 43시간이 지나서 문을 열었다. 자신은 감금당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감금이 아니라 ‘잠금’이었다고 몰아붙였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고, 모든 것이 잠잠해지는 상황에서 돌발상황이 잇따라 터졌다. 수사를 맡았던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윗선(경찰) 의 압력이 있었다고 양심선언을 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직원들에게 정치개입을 지시한 문건이 잇따라 폭로됐다.
검찰은 원 전 국정원장을 출국금지했고, 14시간이나 불러 조사하는 등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사상 두 번째로 국정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도 이뤄졌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민주당에 국정원의 여론조작 사실을 제보한 전 국정원 직원 3명의 집을 압수 수색했다. 이번 사건이 과연 국정원게이트라고 불릴 만큼 조직적인 여론조작이나 선거 개입이 이뤄진 것일까. ‘국정원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 봤다.

국정원 직원 여론조작 개입 의혹
18대 대선(12월19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2012년 12월11일 밤 흥분한 민주당 당직자들이 한 국정원 여직원 김모(28) 씨 집 앞에 진을 쳤다. 이들은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여론조작에 개입했다며 문밖에서 김 씨를 불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김 씨는 43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민주당 측은 내부에서 모든 자료를 지우느라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국정원은 민주당 당직자들이 여직원 김 씨를 감금했다고 주장했다. 대선을 사흘 앞둔 16일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TV토론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여론조작을 두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문재인 후보는 여당이 여론조작에 나섰다고 몰아붙였고, 박근혜 후보는 가당치 않은 일로 무시했다.
이튿날인 17일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의 여론조작 관련 중간수사를 발표했다. 수사의 핵심요지는 “댓글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17일 충남 천안시 쌍용동 거리유세에서 “그 불쌍한 여직원 결국 무죄라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지시 문건
3월18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문건을 폭로했다. 진 의원은 국정원 내부망(인트라넷)에 올려진 25건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건을 공개하면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원 원장의 지시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건에는 종북 세력들이 사이버 상에서 국정 폄훼활동을 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처할 것, 국정원 심리전단의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을 강화할 것, 종교단체의 정부 비판 활동을 견제할 것,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에 대한 대국민 여론전을 펼칠 것 등이 포함돼 있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이튿날인 19일 원 전 원장과 국정원 여직원 김씨를 국가정보원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민주통합당도 지난달 1일 원 전 원장을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민주노총·전교조·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도 3월21일과 25일 원 전 원장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업무상 횡령,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반면 국정원 여직원 김 씨는 자신의 아이디(ID)를 언론사 기자에게 제공한 인터넷사이트 ‘오늘의 유머’ 운영자 이모(41) 씨를 고소했고, 국정원도 댓글사건과 관련해 전 현직 직원 2명을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결국 검찰은 3월 하순 원 전 국정원장을 출국금지했다. 주변에서는 숱한 여론이 일었다. 원 전 국정원장이 미국에 호화저택을 구입했다는 개인비리에서 재직시절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개입 문건을 하달했다는 내용 등 다양했다. 원 전 원장은 3월28일 자신은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국정원 보고 받았나?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이 최고 쟁점이 된 12월16일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은 기묘했다. 이날 낮 12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경찰은 눈치 보지 말고 오늘 중으로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날 오후 10시40분 새누리당 박선규 대변인은 “아마 제 생각에는 국가적인, 국민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오늘 나올 겁니다”라고 밝혔고, 불과 20분 뒤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발표 내용은 “국정원 여직원 김 씨의 댓글 흔적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불과 11분 뒤 국정원은 “민주당이 제기한 조직적 비방댓글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며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정황은 경찰과 국정원이 새누리당에 수사 상황을 모두 보고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박근혜 후보가 어디까지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 차원에서는 어떤 루트를 통해서든 이를 모두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경찰의 뒤집힌 수사 결과 발표
4월18일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작 사건 수사 결과를 최종 발표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 씨, 이 모씨(38), 일반인 이 모씨(42)가 정치 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국정원 심리정보국의 조직적 개입을 밝히기 위해 민 모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을 불렀지만 불응해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다고 했다. ‘김씨의 컴퓨터에서 문 후보 비방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지난해 12월16일 밤 11시 중간수사 발표 내용과 전연 다른 내용이었다.
경찰은 중간수사 결과 발표와 어긋난다고 기자들이 따지자 “12월16일 발표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이고(컴퓨터에 댓글 흔적이 없다), 오늘 발표는 여태까지 수사 해보니 특정 사이트에 글을 올린 부분은 어느 정도 정치 관여 행위로 인정된다”라고 둘러댔다. 경찰은 또 국정원법 위반 기소 의견을 내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술을 마셨는데 음주는 아니라는 말이냐”라고 묻자,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에 해당하지는 않고,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에는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얼버무렸다.

권은희 수사과장 “윗선에서 축소 지시” 폭로
그러나 경찰 수사 발표 이튿날, 경찰 내부에서 수사 축소·은폐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수사 초기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수사 축소에 관여했다는 내용이었다. 폭로는 이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권 과장은 국정원 여직원 김 씨의 PC 2대를 서울경찰청에 분석 의뢰한 것과 관련 “수사팀은 대선 관련 78개의 키워드를 발견해 해당 키워드를 통한 하드디스크 분석을 의뢰했지만 서울경찰청은 ‘이러면 신속한 수사가 어렵다’며 수를 줄여서 다시 제출하라고 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2월16일 발표된 중간수사결과에 대해서는 “당시 발표는 서울경찰청의 지시였다”며 “보도자료만 밤늦게 도착했고 분석자료는 이틀 뒤인 18일 오후 늦게야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서경찰서는 “디지털 증거 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급물살 타는 검찰 수사
국정원 여직원 김 씨에게서 비롯된 국정원의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작의혹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로 이송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지휘 아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팀장을 맡았다. 윤 팀장은 검찰 안에서 채동욱 총장이 키운 강골 특수통으로 통한다.
특별수사팀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은 2005년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 이후 사상 두 번째다. 이번에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은 ‘인터넷 댓글’을 단 직원들이 대거 근무했던 국정원의 옛 심리정보국 산하 사무실로 알려졌다.
국정원 심리정보국은 2011년 말 3차장 산하의 대북심리전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해 새롭게 출범했다가 최근 전격 폐지됐다. 활동 당시 산하에 안보 1·2·3팀 등 4개 팀을 두고 70여명의 인력이 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압수수색은 국정원이 직원들의 ‘인터넷 댓글’ 작성 및 대선·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해 조직적으로 불법 행위에 개입·관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먼저 핵심 관련자의 진술 확보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각종 의혹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전 심리정보국장 민씨와 지휘 계통상 직속 상관인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을 지난달 25일과 27일 각각 조사했다. 이어 29일에는 의혹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지목되는 원 전 원장을 전격 소환 조사했다.
검찰이 국정원을 상대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것을 보면 검찰이 국정원의 댓글 작성 및 정치개입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가능하다. 막무가내로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원도 남재준 신임 원장이 취임하면서 내부 분위기를 일신했다. 국정원은 남재준 원장 지시에 따라 장호중감찰실장을 중심으로 수사국 요원이 참여한 ‘원세훈 전 원장 비리의혹 조사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만에 하나 원 전 원장이 선거나 여론조작에 관여했더라도 전 정권의 비리로 판단하고, 꼬리를 자를 수밖에 없는 처지임에 틀림없다.

국정원 전 직원 등 3명의 집 압수수색
검찰은 지난 2일 국정원 기밀을 공개한 전직 직원 김모, 정모 씨와 일반인 장모 씨의 자택과 자동차를 압수수색해 국정원 업무와 관련된 자료,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제보자를 압수수색한 것을 두고 말이 많지만 검찰의 수사 의지는 강력해 보인다. 검찰개혁의 칼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섣불리 딴 속셈을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며 기밀 유출 경위와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압수물을 분석함과 동시에 김 씨와 정 씨의 관계, 두 사람이 민주당에 국정원의 댓글 작업 등에 관해 제보한 경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또 이들 사이에서 ‘메신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일반인 장 씨의 역할을 파악하는 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앞서 국정원은 이번 의혹 사건이 불거지자 댓글 작업 내용을 김 씨에게 제보한 정 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직무상 비밀누설 혐의와 정치 관여 혐의로 파면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국정원은 관련 내용을 민주당에 제보한 김 씨도 같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 씨는 지난 19대 총선 당시 민주당의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등 정치활동을 하다가 정 씨로부터 받은 정보를 민주당 측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상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검찰 수사 칼끝의 방향은?
검찰의 수사 방향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이나 선거에 개입했는가 하는 점이다. 또 그 경우 원 전 원장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내용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도 수사하게 된다.
검찰은 이를 위해 민주당에 제보한 3인,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고 발표한 권은희 수사과장을 차례로 소환해 혐의를 입증하고 있다.
검찰은 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발한 민주당측 고발 대리인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고발대리인 김창일 변호사로부터 고발 경위 및 증거자료 등을 확인했다. 민주당은 김 전 청장이 진실과 다른 수사 결과를 지난해 12월17일 발표하게 했으며 경찰공무원법상 정치운동 금지 조항도 위반했다며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번 검찰의 국정원 수사를 계기로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가 아니 독립된 국가기관으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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