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외교부장관 후보자 강경화는 누구?

▲ 1999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정상회담에서 동시통역을 하고 있는 강경화 당시 대통령특보.<사진=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위클리오늘=강민규 기자] 강경화(62) 외교부장관 후보자의 아버지 고 강찬선 아나운서는 1951년 1.4 후퇴로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중 아나운서 모집 때 합격한 뒤 KBS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하다가 1964년 미국의소리방송(VOA) 아나운서로 공식 파견됐다.

강경화 후보자는 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이국 생활을 했다. 당시 소녀 시절에 쌓은 영어실력은 강경화의 큰 자산이 됐다. 그 후 국내로 돌아와 이화여고를 거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졸업 후 강경화는 아버지와 같은 직업인 아나운서의 길로 선택한다. KBS국제방송국에 입사한 강경화는 2년 동안 그곳에서 아나운서 겸 PD 일을 했다. 그후 이일화씨와 결혼하고 남편이 유학길에 오르면서 강경화도 같이 유학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1980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가 됐고, 1984년 2월 같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과 방송, 국회 등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김재순, 박준규, 이만섭 국회의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강경화 후보자는 1998년 외교부 장관 보좌관으로 특채되면서 본격적인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이때는 외환위기로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맞았을 시기였고, 정권 교체기 이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국제적인 협조를 최대한 이끌어내야 할 상황이었다.

강경화 후보자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전화통화를 동시통역하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강 후보자의 실력을 알아본 김 대통령의 낙점을 받아 대통령 영어 통역특보로 발탁됐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에도 강경화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동시통역을 맡는 등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내 말이 강경화 특보를 통해 통역되면 더 멋있게 만들어진다"고 강 후보자의 영어실력을 극찬했다. 

이희호 여사도 2013년 11월 강경화를 만났을 때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정상회담 등을 회상하며 강 후보자의 업적을 칭찬했다.

강경화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에 임명되면서 비고시출신 여성 최고위 외교관료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강경화 후보자는 2006년 코피 아난 사무총장 시절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OHCHR 부고등판무관에 보임되면서 주 활동 무대를 유엔으로 옮겼다.  

이후 반기문 사무총장에 이어 안토니오 구테하스 신임 사무총장 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3명이나 보좌하는 특이하고 화려한 활동이력을 가지게됐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