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주년 삼일절인 2018년 3월1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 (왼쪽부터) 홍범도, 지청천, 이희영, 이범석, 김좌진 장군들의 흉상. (사진=뉴시스)
제99주년 삼일절인 2018년 3월1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 (왼쪽부터) 홍범도, 지청천, 이희영, 이범석, 김좌진 장군들의 흉상.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홍지훈 기자]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자리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갈 곳을 잃었다. 대책도 없이 서둘러 제막식을 하고 정권이 바뀌자 또 대책 없이 철거부터 조급히 결정한 국방부와 육사의 성급함 탓이다.

우리 군은 줏대가 없는 것 같다. 우리 군과 육군사관학교의 뿌리가 정권이나 진영 논리에 따라 춤을 춘다.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투사들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민족의 영웅으로 마땅히 존경돼야 하고, 이 중에서도 동족의 탈을 쓰고 민족의 심장을 총탄으로 유린한 북한 괴뢰군이었거나 부역자는 민족의 배신자인 '주적'으로 삼으면 된다.

때문에 국방부와 육사는 항일했지만 공산주의자였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치우려거든, 공산당 빨갱이를 때려잡은 반공투사라도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의 배려와  그 흔적도 함께 없애면 된다. 

자유 대한민국 국방부와 육사의 정통성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고 공산당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인물과 단체 중 그 교집합에 속하는 데 있어야만 한다.

최근 <본지> 취재진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이전할 장소로 알려진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 Independence Hall of Korea)을 직접 방문했다.

정부 발표와 달리 독립기념관 측은 난감한 모양새였다. “흉상을 모실 곳이 없어서…”였다.

실내에 모시는 방안을 훑어봤다. 총 6관으로 구성된 전시관 중 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역사를 다룬 3관부터 6관, 그 어디에도 홍 장군의 흉상을 설치할 만한 공간은 딱히 없었다.

현재 독립기념관에는 현재 육사에 마련된 홍범도, 지청천, 이회영, 이범석, 김좌진 장군들 외에도 수많은 항일 독립투사들이 모셔져 있다. 애써 자리를 마련하더라도 그분들을 병풍으로 세우고 홍 장군의 흉상만 홀로 설치하면 논란거리가 될 게 자명하다.

실내에 모실 수 없다면 야외뿐이다. 김좌진 장군,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의 거대한 동상들이 세워진 자리 옆이다. 하지만 그분들 동상은 높이가 5미터가 넘어 자그마한 홍 장군의 흉상을 옆에 모시는 것도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 게 뻔하다.

독립기념관 측은 “만약 흉상이 이전된다면 우선 수장고에 모실 수밖에 없다”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독립기념관의 수장고가 어딘가. 1관 지하 창고다. 비록 연중 방습·방균 장치가 가동된다지만,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국방부의 논리에 따르면 ‘독립군의 격에 맞는, 더 많은 시민이 볼 수 있는 곳’이라야 하지만, 적어도 수장고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독립기념관 내 설치된 윤봉길 의사(왼쪽부터),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의 동상. (사진=김인환 기자)
독립기념관 내 설치된 윤봉길 의사(왼쪽부터),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의 동상. (사진=김인환 기자)

독립기념관 측의 설명에 이어 국방부와 육사에 곧바로 질의했다.

‘독립기념관 측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할 마땅한 장소가 없다는데 협의도 없이 발표부터 했는가요’라는 질문에 대답 대신 “독립기념관 측이 그렇게 답변하던가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그러면서 잠시 후 “꼭 독립기념관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장소를 물색 중”이라고 에둘렀다.

‘위에서 그냥 까라면 당연히 까야지’하는 무언의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압박감이 기자에게 이입돼 씁쓸했다. 독립기념관이 국방부나 육사의 하급기관이나 졸개가 아닌데 말이다. 기자의 주관적 판단이라 치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독립기념관이 우리에게 있어 어떤 곳인가? 1982년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모금을 통해 1987년 광복절에 개관한 ‘항일 독립’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또한 정부조직도 상으로는 국가보훈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국방부나 육사 수하가 아닌 거다.

국방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홍범도의 무장항쟁은 존중하지만, 말년의 행적이 육사 생도를 교육하기엔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그래서 육사의 정체성에 관해 다시 물었다.

육사 내 흉상 5인 중엔 아나키스트도, 파시스트도 있는데 그 사상은 육사 생도를 교육하는 데 문제가 없는 건지,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로당 총책으로, ‘찐’ 공산주의자였다는 논란이 있는데 그건 괜찮은 것인지.

아울러 육사의 교육 목적은 ‘국가 방위에 헌신하는 육군 정예 장교 육성’인데 그 국방은 북한 괴뢰군만 때려잡는 데 해당하는 것인지, 북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는 싸울 수 없다는 건지.

그러자 국방부 관계자는 “(박정희 논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이념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희한하다. 홍 장군의 흉상 이전은 그 ‘이념’ 탓에 빚어진 일인데 이념을 말하지 말라니. 게다가 국방부는 ‘빨치산’, 레닌과 스탈린의 공산주의조차도 구별 못 해 기자들로부터 톡톡히 망신을 당한 터다. 그래도 국방부의 의지는 그대로였다.

적어도 독립기념관에 모셔진 ‘항일 독립투사들’께서 들으시기엔 1대 육군참모총장부터 숱한 총장들이 일본 장교 출신에다, 또 그 절반 가까이가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을 배출한 국방부가 할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국방부는 이전을 위한 후속 협의도 없었다. 독립기념관 측이 이와 관련해 육사로부터 ‘전화’ 문의를 받은 건 지난달 24일이다. 그 후로는 어떤 추가 협의도 없었다고 했다. 높은 분으로부터의 ‘상명하복’ 아니면 ‘우선 들어내고 보자’는 심리의 발로였을까.

공교롭다. ‘경술 국치’ 주간이던 지난 8월24일, 항일무장투쟁 영웅 5인의 흉상은 그렇게 자리를 내주게 됐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나 육사는 사관학교 교정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친일과 공산주의·독재에서 자유로운 무장항일·반공·반독재의 영웅으로 빛나는, 예를 들어 육사 7대 교장이셨던 김홍일 장군의 이름이라도 거론했어야 마땅했다. 지난 정권의 국방부가 자초한 뼈아픈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과오를 잊어 선 안된다. 항일을 했다지만 친북·종북 논란이 있는 인물은 띄우지 마라. 아예 그런 자는 발굴하지도 마라. 국민 화합이 먼저다.

특히 진영 논리로 생업에 바쁜 국민들 편을 갈라 정권 연장에 이용하려 들지 마라. 그런 정권은 길어봐야 5년이면 ‘땡’이다. 지난 정권이 그랬고, 현 정권이라고 예외일 순 없겠다.

백범 김구 선생님(앞줄)과 김홍일(뒷줄 오른쪽) 장군. 왼쪽의 인물은 이봉창 의사의 폭탄을 제작해 준 중국인 왕바이슈.
백범 김구 선생님(앞줄)과 김홍일(뒷줄 오른쪽) 장군. 왼쪽의 인물은 이봉창 의사의 폭탄을 제작해 준 중국인 왕바이슈.

요즘 세계 질서는 강제된 무력 앞에 혼란스럽다.

러시아 붉은 군대가 우크라이나 유치원과 학교, 병원 등을 조준 폭격하고 중국 공산당은 일방적으로 태평양에 선을 긋고 자유 항해를 방해하고 대만을 침공하려 한다. 어느 때보다 자유·평화를 지켜 줄 안보가 중요해졌다. 독재자 김정은의 북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겐 더욱 그러하다.

이런 때, 무릇 국방부는 정치와 진영 논리에 휘둘림 없이 국군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진정 국방부가 우리의 생명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김정은 괴뢰군과 친공산당 패거리를 압살코자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 국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발 벗고 나설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친일 행적이 아예 없으면서 공산주의를 쳐부순 인물을 찾아내라. 일본 제국주의를 때려잡고 북한 공산당을 무찔렀던 ‘오성 장군’ 김홍일 영웅 같은 어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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