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세계의명화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4일(토) 밤 10시 55분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원제: Sicario)=감독: 드니 빌뇌브/출연: 에밀리 블런트, 베니치오 델 토로, 조쉬 브롤린/제작: 2015년 미국/러닝타임 : 121분/나이등급: 19세.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윤리와 합리,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대립하는 영화다. 

악행에도 차등이 있을 수 있을까.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행하는 악은 악의로 보아야 하는가, 선의로 보아야 하는가.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 목적 달성의 의지와 그 의지를 완성하는 수단에 관해 혼란한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케이트가 한 치 앞을 짐작하지 못하고 사건과 상황에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은 영화를 마주하는 관객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정의를 믿으며 공인된 방식으로 범죄를 처단하고 싶어하는 케이트와 위법과 폭력으로 점철돼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거침없이 수사를 해나가는 맷과 알레한드로 중 누가 더 옳은가. 

영화는 관객이 윤리와 합리의 경계에서 길을 잃도록 만들고 그 사이에 질문을 마구 던져놓지만, 끝내 답은 없다.

▶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줄거리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아리조나의 어느 동네에서 아동 납치 살해 사건을 수사한다.

사건이 실상은 규모조차 짐작할 수 없는 최악의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의한 계획 범죄임이 알려지고 수사 중 사고로 경찰까지 사망한다. 

미국 정부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특수 수사팀을 꾸리고 자유분방한 요원 맷(조쉬 브롤린)을 책임자로 부른다. 

케이트는 작전에 투입돼 맷과 함께 멕시코 검사 출신이라는 길잡이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를 만나 후아레즈로 간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에 당도해 후아레즈로 들어서자마자 케이트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예상이 가지 않는 악의 기운을 감지한다. 

법이 소용이 없고, 선과 악의 개념이 흐려지는 그 곳에서, 수사와 단죄는 철저히 사법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케이트의 믿음은 흔들린다. 

맷과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와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수사를 한다. 케이트는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도 모자라 폭력과 고문으로 수사를 이어가는 두 사람에게 분노하지만 불만이 있다면 그만둬도 된다는 투의 태도에 조용히 둘을 따르기로 한다. 

케이트의 분노는 점차 스스로의 무력함과 순진함에 대한 것으로 바뀐다.
 
▶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감상포인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알레한드로가 케이트에게 작전이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쓰인 문서에 서명하라며 "자살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가능성을 말하고 있지만 실은 협박이다. 알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과 현실의 괴리를 깨닫고 케이트는 혼란스러워 한다. 

케이트와 알레한드로는 다른 듯 같은 존재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접하고, 해결하려 했지만 결국 그들이 지켜낸 것은 자신들(혹은 미국)의 안전이다. 

알레한드로의 협박이 있었지만 케이트는 결국 그에게 동조했다. 후아레즈에서 케이트는 극심한 상처를 입었고 그로 인해 케이트는 변했다. 

어쩌면 케이트가 그곳에서 경험한 일이 훗날에는 케이트가 보고 겪을 무수한 사건들 중의 하나로 간단히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 후아레즈는 안온한 세계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범죄의 온상이다. 케이트와 알레한드로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후아레즈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후아레즈 안에서 앞으로 쭉 살아갈 실비오의 아들은 그곳의 불법과 폭력과 죽음을 이미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케이트와 관객. 후아레즈의 진실을 목도한 자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외면할 수도, 부딪힐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이고, 옳지 않은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순간의 목격과 경험으로 케이트(와 관객)에게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감독 드니 빌뇌브

드니 빌뇌브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다양한 형식과 스토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드니 빌뇌브는 장르와 내용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고전적인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초현실적인 묘사를 시도하는 창의적인 연출자다. 

인간과 문명의 나약함, 추상적 개념의 경계에 오랜 관심을 두었고, 이러한 의식은 <에너미>, <컨택트> 등의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드니 빌뇌브는 1967년 캐나다 퀘벡에서 출생한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다. 퀘벡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캐나다에서 <지구에서의 8월32일>(1998)이라는 작품으로 장편 연출 데뷔했다. 

데뷔작이 제51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 받으며 일찌감치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 여성의 무너져가는 삶과 회복에 관해 묘사한 두 번째 장편 <마엘스트롬>(2000)은 제5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장편 <폴리 테크닉>(2009)은 1989년 몬트리올의 어느 공대에서 한 남학생이 14명의 여학생을 총으로 쏘아 죽인 실화에 바탕한 흑백 영화다. 

와이디 무아와드의 동명 희곡을 각색한 영화 <그을린 사랑>(2011)은 드니 빌뇌브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를 찾기 위해 중동을 방문한 쌍둥이 남매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로 얼룩진 어머니의 사연은 오랜 분쟁으로 황폐해진 레바논의 비극적인 역사를 은유한다. 

다음 작품인 <프리즈너스>(2013)는 드니 빌뇌브를 할리우드로 입성시킨 영화다. 부부의 딸이 유괴된 상황에서 남편과 형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할리우드 장르물의 외피를 입었지만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별개의 사건들이 서서히 결합해 큰 그림을 드러내는 드니 빌뇌브식의 서사 구조는 여전하다. 언제나와 같이 무난한 낙관은커녕 불길하고 진지한 의문을 남기며 끝맺는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를 영화로 만든 <에너미>(2013)는 똑같이 생긴 교수와 배우가 역할을 바꿔 서로의 삶을 대신 살며 겪는 변화를 그린다. 

<컨택트>(2016)는 테드 창의 SF 소설이 원작이다. 단순한 이야기를 낯선 방식으로 풀어낸 매력이 상당하며, 지금까지의 작품과 달리 순진하고 낙관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최근작 <블레이드 러너 2049> 또한 오리지널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에 뒤지지 않는 사색적인 SF 걸작으로 호평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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