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측 강일원 헌법재판관 기피신청 '모욕'으로 '1표 상실' 자초

▲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에 참석한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위클리오늘=강민규 기자]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헌법재판관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기피신청을 당하는 '치욕적'인 하루를 보냈다.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 도중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이 공정성을 잃었다며 기피신청을 제기했다.

박대통령 대리인단측은 “강일원 재판관이 헌법적 근거도 없이 증거에 적법성을 부여해 증거 규칙을 멋대로 위반하고 일방적으로 위헌위법한 재판진행과 독선적인 해석을 통해 고압적으로 재판을 진행해 헌법재판소법 40조에 준용되는 민사소송법 43조 1항, 재판공정성을 해할 수 있어 기피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기피신청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 당해 재판의 직무집행에서 배제해달라는 소송법상 절차다.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은  해당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에 피고나 원고 등 재판 당사자가 해당 재판부에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당사자가 법관을 기피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안에 관하여 변론하거나 변론준비기일에서 진술을 한 경우에는 기피신청을 하지 못한다.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박대통령 대리인단측의 기피신청은 곧바로 각하됐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은 박대통령측의 기피신청 직후 휴정을 선언하고 10여분간 재판관들과 논의한 뒤 기피신청을 각하한다고 밝혔다. 각하는 본안 내용의 잘잘못을 따져보기 전에 신청의 형식적 기본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 내리는 결정이다.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은 법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정치적 쇼라는 게 헌재 재판관들의 판단이었던 셈이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측의 기피신청에 대해 "오직 심판의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부적합해 각하한다"고 말했다.

박대통령 대리인단이 심리 도중에 주심 재판장에 대해 기피신청을 낸 것도 특이하지만, 헌재 재판관의 각하 사유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라는 게 법조계 평가다.

이정미 소장대행이 박대통령 대리인단측의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오직 심판의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단정한 것은 이날 기피신청 이전 변론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박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 등의 태도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이날 변론에서 대통령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는 강일원 주심재판관을 직접 거론하며 심판 진행의 공정성과 변론 진행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평우 변호사는 "강일원 재판관은 탄핵소추 의결 절차가 적법절차 위반에 해당하는 지는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 아니라고 한 법적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강일원 재판관은 지난해 12월 22일 탄핵심판 1차 변론준비절차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기한 탄핵소추 의결의 적법절차 위반 주장에 대해 주요 쟁점이 아니므로 심판 절차에서 다루지 않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자체가 적법절차를 어긴 것이라는 주장을 헌재 변론 초기부터 제기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등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언론보도 등 풍문만을 근거로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해 탄핵심판에 필요한 형식적 조건도 갖추지 못한 것이므로 헌재에서는 탄핵심판을 요건 흠결을 이유로 아예 각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일원 재판관은 올해 57세로 용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로스쿨을 다녔다. 김평우 변호사가 이날 강일원 재판관에게 "미국에서 공부했으니 기본적인 지식은 있을 테고"라며 조롱성 발언을 한 것은 강 재판관의 이런 미국 유학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헌법재판관은 총 9명인데 이중 3명은 대통령이, 3명은 대법원장이, 나머지 3명은 국회에서 지목한 인물로 충원된다. 국회 몫 3명은 다시 여당 1명, 야당1명, 여야 합의 1명으로 나뉜다. 강일원 재판관은 2012년 국회 여야 합의 몫으로 헌법재판관이 된 케이스다.

강일원 재판관이 여야합의로 헌법재판관이 된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성향을 지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단이 강일원 재판관에게 "국회측 대리인 같다"는 등의 막말성 발언을 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우군이 될 수도 있었던 재판관 한명을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패착이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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